볼거리

[제1경] 의림지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 하였습니다.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였는데, 그 후에 제천의 옛 이름인 '의'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축조된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전에는 신라 진흥황 (540~575)때 악성 우...

[제2경] 박달재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갈라놓은 험한 산을 박달재라 한다.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 리에 이르렀다. 마침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이 있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제3경] 월악산
중봉 하봉 두 형제 거느린 영봉 .... 월악산은 네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송계 쪽에서 보면 영봉, 중봉, 하봉으로 이어지는 암봉의 행진이 장엄하다. 맨 오른쪽 영봉은 특히 백여 미터는 족히 될 법한 깎아지른 벼랑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중봉과 하봉, 두 형제를 아우른다. 특히 4월이면 한수면 민박마을에서 바라보는 영봉은 활짝 핀 벚꽃 가로수 위로 떠 있...

[제4경] 청풍문화재단지
정부의 4대강유역 종합개발계획으로 충주다목적댐 공사가 1978년 6월부터 시작하여 1985년 10월준공되기까지 수몰지역내의 산재되어 있는 문화유산을 1983년부터 3년여에 걸쳐 1만 6천평의 부지위에 원형대로 이전 복원하여 1985년 12월 23일 개장하였습니다. 청소년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지금은 8만 5천평의 규모로 ...

[제5경] 금수산
퇴계 이황 선생이 지어준 '금수산' 금수산(錦繡山)1,015.8m의 원래 이름은 백운산이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단양 군수를 지낸 퇴계(退溪) 이황 (李滉·1501∼1570)이 단풍 든 이 산의 모습을 보고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며 감탄, 산 이름을 금수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금수산 남쪽 마을 이름이 백운동인 것도 옛 산 이름의 흔적이다...

[제6경] 용하구곡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서 신륵사 쪽으로는 월악산 정산을 오르는 길이 있고, 억수리 쪽으로는 두 갈래 골짜기로 갈라져서 용하수 골짜기와 수문동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데 곳곳마다 16km의 계곡에는 원시림과 천하의 절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용하구곡의 제1경인 수문동 폭포의 장관부터 시작하여 병풍폭포, 수곡용담이 자연의 신비를 연출하고 8km물길의 비경인 관폭대...

[제7경] 송계계곡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를 거쳐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까지 이어진 8㎞의 송계계곡은 수안보와 단양의 중간인 제천에 위치해 있으며 깊은 골짜기와 맑고 시원한 물, 월악산 등의 크고 작은 봉우리와 사찰, 절터 등 유물이 산재한 여름 피서지의 보고입니다. 송계계곡은 8개의 계곡으로 되어 있습니다. 월악영봉 월악산의 최고봉(1094m...

[제8경] 옥순봉
김홍도의 병진년화첩에 등장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옥순봉(玉筍峯)은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있다. 제천 10경 중 8경에 속하는 옥순봉은 지리적인 이유로 구담봉과 함께 단양 8경에 속하기도 한다. 옥순봉은 조선 초 청풍군(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해 있었다.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 선생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단양 태생의 기녀 두향이 아름...

[제9경] 탁사정
강원도 원주에서 제천을 들어오는 국도 5호선 변에 자리하고 있는 제천근교의 유일한 유원지이며 여름 피서철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곳입니다. 조선 선조 19년(1568)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에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심고 이곳을 팔송이라 명명하였고, 그 뒤 정자를 짓고 팔송정이라 하였습니다.허물어진 팔송정을 후손 윤근이 다시 세웠고 원규상...

[제10경] 배론성지
배론 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 천주교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성지로 1801년 신유박해때 많은 천주교인이 배론 산골로 숨어들어 살았는데 그들은 옹기장사로 생계를 유지하였고 황사영이 당시의 박해상황과 천주교 신도의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토굴 속에 숨어 집필한 지역이며 1855-1866년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요셉신학교가 소재했던...